글쓴이: 종두(운영자) / 2006.10.12 / http://cafe.daum.net/sgch에서 퍼옴



<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글, 퍼왔습니다. > (40회 전영석 씀)

헤럴드경제 10월 2일자 사회면에 우리학교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날 저는 헤럴드경제의 김소민기자와 두시간 가량 인터뷰를 했답니다.

자세히 소개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학교 개교 80주년을 맞아 아주 좋은 기사라 여기 소개합니다.



Home > 뉴스종합 >> 사회 2006.10.02.16:24


풀먹인 칼라가 자존심이었는데… 서울여상 개교 80돌로 본 한국 여자상업고등학교의 어제와 오늘

은행으로 직장으로…100%가 취업 집안 살림밑천 신세대가 90% 진학…이젠 정보화 산실 자리매김




"이게 누구야, 창순이 아니니."

"어머! 43년 전에 졸업하고 처음이네. 그동안 도대체 어디 있었니!"

지난 29일 서울 봉천동 청명산 자락은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개교 80주년 기념일 행사로 시끌벅적했다. 강당에서
기념식이 끝나자마자 학교 뒷마당으로 쏟아져 나온 80여명의 동창생은 40대 아주머니부터 90대 할머니까지 연령
층이 다양했지만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하나같이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미국 캐나다 일본 심지어 노르
웨이까지, 먼 이국땅에서 모교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하러 온 이들은 어느새 여고시절로 돌아가 재학생 후배들 앞
에서 옛 이야기를 풀어 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땐 서울 최고 명문의 여학교였지"= "서울여상 출신들이 워낙 일을 잘했어. 그땐 세자리 암산도 가능했지. 당
시로는 굉장히 큰 돈이었던 100만~1000만원 단위도 순식간에 헤아릴 정도였으니까. 오죽하면 우리 팀에 있던 서
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남자 사원 하나는 전표 걷으러 다니는 보조 노릇만 했다고." 졸업생 김종두(48ㆍ76년 46회
졸업) 씨는 그 시절의 추억에 아련히 젖었다.


1926년 일제시대에 '경성여자상업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51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로 개칭한 서울여상
은, 1960~198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사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는 등
국내 최대의 경제부흥기였던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하는 것'은 여성 사회진출의 가
장 성공적인 모델이었다. 당시 서울여상 졸업생들은 금융계를 장악하다시피 할 정도였고, 서울여상 출신이라는 것
은 어딜 가나 든든한 배경이 됐다. 졸업생들은 국민 대다수가 한참 못 살던 그 시절,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면서 동
생들 뒷바라지를 도맡는 '살림밑천'이었다.


그만큼 모교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풀 먹여 빳빳하게 세운 하얀 칼라는 절대 꺾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징이었
고 누구나 멀리서 교복만 보고도 "참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구나"하며 칭찬했다. 그때 서울여상 학생들이 미국에
서 원조 받은 스미스 코로나 타자기로 딴 2급 타자 자격증과 부기, 주산 2급 자격증은 온 동네의 자랑이었다.


그렇게 화려했던 과거 때문일까. 서울여상은 여고로서는 드물게 동문회가 활성화돼 있고 동문들의 학교에 대한 애
착이 남다르다. 아직도 100주년 때 입겠다며 수십년 전 교복과 체육복을 보관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덕분에 학교
는 이번 개교 80주년을 맞이해 서울여상 역사관을 개관하고 졸업생들이 기증한 물품과 사진을 전시했다.


▶"명성 여전하지만 대졸만 우대하는 사회 아쉬워"=부러울 게 없던 서울여상도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6차 교육과정에서부터 부기, 타자 등 과거식 수업과목이 사라지고 돈 계산이나 예금 관리가 전산화되면서 여상 졸
업생의 금융계 취업 수요는 급격히 줄었다. 대신 대기업 경리과로 가는 경우가 늘었다.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하면
서 '상고' 동지들이 하나둘 '정보고등학교'나 '디지털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서울여상이라는 브랜드의 명성은 여전하고 졸업 후 취업률은 100%에 이르지만, 능력과 상관없이 4년제 대학 졸업
자를 우선 대우하는 사회 분위기가 학생들을 위축시켰다. 이때문에 최근에는 서울여상 졸업생들의 약 20~30%가
실업계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대입시 학급에서 공부 중이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
에 다니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서울여상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90%를 넘는다. 상업고 본래의 취지는 다소 약해
진 셈이다.


때문에 서울여상도 변신을 시도 중이다. 최첨단 ERP실을 설치해 모의 기업 실습을 실시하는 한편, 외국인 영어수
업뿐만 아니라 내년부터 해외 연수 프로그램도 도입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원하는 최고의 전문인력을 공급하
는 '서울여상'의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학교 출신(52ㆍ70년 40회 졸업)인 전영석 교사는 "실업계 학교는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산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정작 사회에서 전공과 상관없이 무조건 대졸자만 우대하는 경향이 안타깝다"고 밝
혔다. 이런 마음은 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예진(18) 양 역시 "사회에 빨리 나가 좋
아하는 컴퓨터 관련 일로 인정받고 싶은데 대학중심으로 흘러가는 사회 분위기가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